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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나라 - 양광

수(隋) 양제(楊帝)는 이름이 양광(楊廣: 569 ~ 618) 또는 영(英)이며, 수(隋) 문제(文帝)의 둘째 아들입니다. 그는 수 문제와 형 양용(楊勇)을 죽이고 왕위를 승계하였습니다.

백성들의 노동력을 마음대로 착취하였으며, 유람하며 놀기를 즐겼다고 합니다. 게다가 자신의 위엄과 명성을 과시하길 좋아해 군사력을 남용해 전쟁을 일삼는 폭군이었다고 합니다.
결국은 반란이 일어나 목이 졸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진나라 - 불로장생을 꿈꾸던 진시황

진시황제(기원전 259년 1월 ~ 기원전 210년 음력 9월 10일)는 진나라의 제31대 왕이며, 중국 최초의 황제입니다. 이름은 영정(嬴政)이며, 조나라에서 출생하였기에 조정(趙政)이라고도 합니다. 진 장양왕 영자초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당시 세도가 대단하던 조나라의 상인 출신의 승상 여불위의 아들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불로불사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대규모의 문화탄압사건인 분서갱유사건을 일으켜 수 양제와 더불어 중국 역사상 최대의 폭군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도량형을 통일하였고 전국시대 국가들의 장성을 이어 만리장성을 완성하였습니다. 분열된 중국을 통일하고 황제 제도와 군현제를 닦음으로써, 이후 2천년 중국 왕조들의 기본틀을 만들었습니다. 전근대의 중국에서는 특히 유학 관료들에 의하여 폭군이라는 비판을 계속 받았으나, 오늘날 중국에서는 병마용 발굴 이후부터 시황제의 진취성과 개척성에 초점을 맞추어 재평가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시황은 중국 역사상 가장 두드러진 인물로써, 군현제도를 확립한 절대적 왕권 중심의 통치자였습니다. 진나라 멸망이후에도 역대 중국의 왕조들이 모두 채택한 탁월한 행정제도 였습니다. 진시황은 불로장생을 꿈꾸고 자신의 욕망을 위해 아방궁과 시황릉을 세우고, 분서갱유를 일으킨 유례없는 독재자였으며 자신의 뜻에 반하는 자는 가차없이 없애버렸다고합니다.

 

 

하나라- 마지막 왕 걸 왕

하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은 이름을 계(癸) 또는 이계(履癸)라고도 합니다. 생몰연대는 미상이며 발(發)의 아들입니다. 발이 병으로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하여 중국역사상 유명한 폭군의 한 사람으로 기록되었습니다. 53년간 재위하였으며, 나라가 망하자 추방되어 굶어죽었습니다.
걸왕과 그의 연인 매희는 사치가 몸에 배여 있었던지라 아무도 시중드는 사람 없는 황량하고 외진 산골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일할 줄도 몰랐습니다. 결국 그들은 와우산(臥牛山)에서 산채로 굶어죽고 말았습니다.

 

 

은나라- 주왕

주왕(紂王)은 수(受)라고도 하며 제신(帝辛)이라고도 합니다. 생몰연대는 미상이며 제을(帝乙)의 아들이다. 제을이 죽은 후 왕위를 계승하여 유명한 폭군으로 기록되었습니다. 33년간 재위하였으며, 나라가 망하자 조가성(朝歌城) 녹대(鹿台)에서 분신자살하였습니다. 장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후세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죄행을 그에게 덮어씌운 것일 뿐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주왕도 걸왕과 마찬가지로 죄악의 상징이자 폭군의 전형이 되었다는 것입니다.